쉬운 비난과 배신감에 대하여

Posted 2016. 10. 20. 08:23

오래전, 내가 학부생일 때 모든 문제의 원인을 대통령 탓으로 쉽게 말하던 선배들을 보며 묘한 반감이 들었다. 과연 그 한 사람에게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게 맞을까? 만일 그 얘기를 하는 선배가 대통령이 된다면, 더 나은 결정을 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결국은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게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하면서 밤새 싸우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많은 생각이 바뀌기도 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여전하기도 하다. 


그 사이 최악의 지도자의 한계처럼 보이던 기록들을 갱신하는 대통령들을 만나오면서, 어쩌면 강력한 의지나 욕망-그 것이 재물욕이든, 비뚤어진 권력욕이든-을 가진 힘있는 사람 한 명이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크고, 내가 기대했던 '시스템'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시스템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증거인 만큼  더더욱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어떤 시스템-그 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의 강화, 과거의 일사분란하고 전체주의적인 '조직'과는 다른 어떠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심지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대통령 한 명을 욕하는 것이 정의인 것 마냥 공감되는 것이 싫다. 누군가가 절대 악이므로 그 악을 단죄하기 위해 나머지의 단결을 강요하고, 룰 같은 것은 잠깐(?) 어겨도 된다는, 그런 것이 정치라는 생각도 싫다.


또한,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모든 것이 사람으로 귀결되면 안된다. 치밀한 계획과 이를 실행할 부지런함이 동반되지 않는 '선의'만큼 무책임한 것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내가 가장 먼저, 가장 철저하게 분리해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가장 의지하고 싶은,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일거다.

나는 애초에 타인에게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었던 나 자신에게 배신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