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연 위, 다정한 한 쌍

Posted 2009. 12. 30. 14:31

우체국과 문구점, 매점을 돌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
학교 점퍼를 나란히 맞춰 입은 한 쌍이
꽁꽁 언 자하연 위를 다정히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생각난
바보같은 내 10년도 더 전의 에피소드.

학부 입학을 하기 전 논술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을 때,
대입에 긴장감이 별로 없던 난 지각을 하고 말았다.
부랴부랴 전철역에서 내려 논술시험 집합 장소인 대운동장을 찾아갔다.
하얗게 눈이 쌓인 대운동장(이라고 생각한 곳)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몇 계단 내려가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 왜 운동장 가운데 섬이 있지?"

"어라 그러고보니 사람도 하나도 없네."

문득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그 곳은 다름아닌 학교 호수.
축제때면 배를 띄우고 놀 정도로 큰 호수였기에
친절히 내려가는 계단까지 있었던 거고,
그 섬은 다름아닌 일감호 중간의 와우도였던게다.

죽다 살아난 기분으로 무사히(?) 논술을 치르고,
그 해 내 생일날
난 일감호가 얼마나 더러운지 말 그대로, 피부로, 체험했다는 뒷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