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야... 미안해...

Posted 2014. 5. 28. 19:57

동네 좀 아는 고양이 꼬리가 오늘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세계 최초, 본묘의 거취 문제로 

아파트 주민투표를 이끌어낸 고양이.

결국 당당히 자신의 살 곳을 얻어낸 고양이, 꼬리.


사고도 아닌데, 생각보다 너무 이른 이별이라 많이 경황이 없네요.


일주일 쯤 전부터,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열이 났데요.

다른 친구가 병원에 데려 갔지만

특별한 징후가 없어서 감기인줄만 알았는데,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늦은 밤, 부랴부랴 데리고 가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원인은 정확히 몰랐지만, 극악의 빈혈에 시달리고 있었고,

주말이라 약을 구하기도 어려워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았습니다.

꼬리는 주말동안 열심히 싸웠고, 

그래서 일요일 오후쯤엔 상태가 많이 호전되는 듯 보였습니다. 

월요일 아침 드디어 적혈구 생성을 돕는 약을 구해 맞추고, 

그 날 오후에는 상태가 점점 좋아 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화요일 오후, 지나가다 들러 본 꼬리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져 있었고, 

같이 돌보던 분들과 논의를 해서 최후의 수단인 수혈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 수혈은 흔치 않아 

피를 구하려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수혈을 받을 때까지 이 녀석이 버텨 줄 수 있을지 걱정을 하며 

하루 밤이 지나고

새벽 6시경에 전화가 왔습니다.

꼬리 상태가 많이 안좋다고.

부랴부랴 달려간 병원에서는 숨을 헐떡이는 꼬리가 있었습니다.

제발, 수혈할 피가 올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바라며 지난 반나절.

점심시간 즈음 대구에서 KTX로 날라온 피를 수혈하기 시작했고,

수혈은 무사히 끝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앉아있는데,

거짓말 같은 전화가 다시 울렸습니다.

꼬리가 정말, 상태가 좋지 않다고.

다시 달려간 병원에는 이미, 심장이 멎은 꼬리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해서 계속 눈물이 나요.

내가 해주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그리고, 내가 했던 일들 때문에.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다는 이유로 맛있는 것을 더 많이 주지 못한 것도,

한동안은 곁에 있을줄 알고, 다음에 놀아줄께라며 미루기만 했던 것도,

좋은 카메라를 늘상 들고 다니면서도

꺼내들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 못생긴 얼굴을 핸드폰으로만 찍었던 것도,

이미 그렇게 길들여져서 사람이 좋아 엘리베이터까지 쫒아 타는 녀석인데

(밖에서 여럿이 돌봐줄 수 있을거라란 오만으로)

좀 더 어렸을 때 좋은 반려인을 찾아주지 못한 것도,


그런데 해주지 못한 일들보다,

제가 했던 일들이 너무 주제 넘은 짓은 아니었을까 더 맘이 아파요.

책임지지도 못할거면서 사람손이 타게 한 것도,

혹시 위한답시고 맞춘 백신 부작용으로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싶어

접종을 한 것도 후회가 되고,

살려보겠다고 며칠동안 힘든 사투를 벌이게 한 것도

어쩌면 그냥, 나와 돌봐주는 사람들의 이기심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말랑말랑한 꼬리를 도저히 병원에 두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꼬리가 늘 놀러나가 동네 고양이들과 맞짱을 뜨던 

뒷산이 생각 났어요.

꼬리가 가장 좋아하던 곳인데,

오늘 밤, 거기에 묻어주려고 합니다. 


함께 갔던 사람들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꼬리를 안았습니다.


꼬리야,

집에 가자.







"꼬리"

2013. 봄 - 2014.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