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이야기

Posted 2013. 11. 26. 20:33

몇달 전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사를 했다.

산기슭의 작은 아파트 단지라 길냥이들이 많아서

그 전에도 종종 길냥이 사료를 놓아주곤 했었다.


그런데 이사온 동 앞에는 유난히 눈에 자주띄는 청소년묘 한 마리가 있었다.


▲ 8월 24일 모습


▲ 8월 24일 모습


▲ 8월 24일 모습


이 녀석에게 가끔 먹이를 주다보니 사람을 유난히 잘 따르고 만지면 발라당도 해서 신기해 했는데

알고보니 나보다 더 잘 돌봐주는 분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녀석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를 나누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꼬리가 말려들어가 있는(아마도 선천적인 것 같다) 이 녀석을

사람들은 '꼬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꼬리가 서식하는 지역 주변의 아파트 사람들이 이 녀석 하나 때문에 인사를 나누고 걱정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거다.

그러다가 만일을 위해 연락처도 주고 받았다.


▲ 주로 돌봐주는 사람들 사는 곳, 11층이 우리집.


그러다 날이 추워지면서 이 녀석이 슬슬 걱정이 되었는데,

10월 중순쯤 6층과 15층에서 돌봐주시는 분이 있는 건물 1층 계단 아래 이 녀석의 임시 거처를 마련해 주셨다.

(그러다 지금은 2가구의 항의로 문 앞 다용도실 같은 곳으로 박스를 옮겼다.)



▲ 10월 16일 모습


▲ 10월 16일 모습


그러다 어제밤, 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에 누군가 현관 벨을 눌렀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옆 동 6층분이었다.

꼬리가 눈을 다쳤다며, 고양이용 안약이 있냐는 것이었다.

안약을 들고 내려가 보니 피와 고름이 나오는 것이 꽤 심각해 보여

안약가지고는 안될것 같아 부랴부랴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 녀석이 병원에 가 본 적이 없어 순순히 따라갈까였는데,

집에서 케이지를 들고 나와 우겨 넣었더니 생각보다 순순히-물론 약간의 반항은 있었지만-들어갔다.


그래서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각막이 다쳤나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각막은 무사한 것 같다고 해서 주사를 맞히고, 연고를 바르고, 약을 처방받아 왔다.


▲ 어제 밤 모습


아무래도 이녀석, 다 컸다고 다른 수컷들과 영역싸움을 하고 다니는 것 같다.


꼬리를 돌보면서 드는 이런 저런 생각들,

-동물, 특히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민원을 넣기도 하는데,

 아파트라는 공동체(같지 않긴 하지만, 여튼)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녀석을 돌봐주시는 주민들은 녀석을 어렸을 때 부터 봐와서인지, 정이 들어서인지 유독 녀석에게 애착이 있다. 

  그래서 녀석의 보금자리에 먹이를 놔두고 다른 녀석들이 거길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민원이 늘어

  겨우 경비실에 허락받아 마련한 이녀석 보금자리마저 잃게 될까 걱정하며 다른 애들을 쫒아 내기도 한다.

  꼭 내자식과 남의자식을 보는 마음들 같은 생각도 들고. 이 문제도 맘에 걸린다.


-모르는 고양이도 아니고, 다친 모습을 보고 선뜻 병원에 데려갔지만,

  24시간하는 병원은 몇군데 없고, 심야 진료비까지 붙으니 병원비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다친 동물들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비용에 대해, 

  혹은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의 반려 동물 진료비에 대해 좋은 해법이 없을까.

  이런 얘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얘기. 다친 사람도 어쩌지 못하는데 동물까지 어쩔 수 있겠냐는 말인데,

  하지만 도시에 같이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해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