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삐딱한 창문 -Ecology'

37 POSTS

  1. 2017.08.18 바질 채종, 쌍살벌, 열린계
  2. 2017.04.13 마쓰무라꼬리치레개미와 쌍꼬리부전나비의 공생
  3. 2017.02.20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4대강 사업, 금강 물고기 떼죽음사태 1
  4. 2017.02.19 지구의 날 공동 설립자, 혹은 유니콘 킬러로 알려진 Ira Einhorn과 관련된 메모]
  5. 2016.09.06 봉이 김선달, 대동강물을 팔아먹다.
  6. 2016.06.21 공간, 환경
  7. 2015.11.07 황어 치어와 연어
  8. 2015.04.21 황어와 피아골 댐(내서댐) 건설계획
  9. 2015.03.21 자전거 도로 단상 -개량적인 방안은 아군인가, 적인가?
  10. 2014.11.24 한양 4대문 안의 하천과 오간수문
  11. 2014.03.20 하천변 자전거 주차장
  12. 2014.03.17 대방역 열차길 너머
  13. 2013.12.28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 Edward O. Wilson
  14. 2011.07.14 이동 기록 3 -작성중
  15. 2011.07.02 이동 기록 2
  16. 2011.06.27 이동 기록
  17. 2011.05.03 아웃사이더 혹은 아웃라이어
  18. 2010.09.02 트위터와 3D TV
  19. 2010.06.15 건설사는 먹튀다. 1
  20. 2010.06.04 만일 이번 선거를 실패로 판단한다면,
  21. 2010.05.18 한강 르네상스
  22. 2010.05.08 건설노동자, 세계 최초 '도시환경운동' 주도하다.
  23. 2010.05.07 과학은 졌다.
  24. 2010.05.03 4대강 사업과 자전거 도로
  25. 2010.01.20 미안해요, 사람 잘 못 봤네요.
  26. 2009.04.09 사회의 이면
  27. 2008.11.01 왼손잡이용 책상 3
  28. 2007.04.03 c o m p u t e r , u s e r - f r i e n d l y SW의 함정
  29. 2006.05.04 연구실 앞 새들
  30. 2006.04.18 공리주의와 다수의 불행

바질 채종, 쌍살벌, 열린계

Posted 2017. 8. 18. 15:14

바질 1차 채종

...하고도 저렇게 많이 남았다. 


귀차니즘으로 한꺼번에 채종하려고 했으나 급하게 1차 채종한 이유는 

일찍 씨를 맺은 꽃대에서 씨가 떨어져서, 

2차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ㅠㅠ




베란다 안에서 바질을 키울때와 바깥으로 내 놓은 후는 천지차이다. 

열린계와 닫힌계의 차이겠지. 




다양한 식물들과 벌레들, 그리고 그 알들까지... 복잡계다!!!


덧. 쌍살벌들과는 좋은 이웃이 되었다.




덧2. 우냉은 바질꽃과 무척 잘 어울린다. 😻





공생하도록 진화

쌍꼬리부전나비 애벌레 마쓰무라 꼬리치레개미가 키움 -나무 속에서 동거
애벌레 두개 돌기에 가는 털 -개미가 돌기 사이를 자극하면 나오는 액체를 먹음 -중독성이 강함
개미가 약물을 토해내 애벌레에 먹이거나, 심지어 자신의 알을 애벌레에게 먹이기도..;;;; 부족한 단백질 보충;;;;

쌍꼬리부전나비는 일부러 꼬리치레개미가 다니는 길목에 알을 낳는다.



http://dean-photo.com/bbs/zboard.php?id=photo_01&page=1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vote&desc=asc&no=687

4대강 사업 직후 가장 큰 생태계 참사가 일어났던 곳은 다름 아닌 금강의 충남구간이었다. (관련해서 레디앙에 썼던 글 http://www.redian.org/archive/59702) 환경단체 추정 약 60만 마리의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고, 시기상, 정황상 4대강 사업이 원인임은 차후 정부측 조사 결과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

안희정 지사는 충남도에서 불과 4년 반 전에, 본인이 지사였던 때 벌어진 이 참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안희정 지사는 이명박의 '녹색성장-설령 그 것이 4대강 사업에 대한 직접적인 옹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니 근데 애초에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4대강 사업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나?'-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를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사실 그는 사업 추진시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해 이랬다 저랬다 입장 변화가 있었고, 충분히 비판받을만한 언행을 해 왔다.

본인은 틈새시장을 찾아 표를 얻기 위해 그렇다 치자. 더 문제인 것은 왜 녹색 진영은 안희정 지사의 '4대강 보 수문 상시 개방' 주장에만 찬사를 보내고 '녹색성장' 운운하는 발언에 대해, 이명박의 '선의'운운하는 발언에 대해 아무 비판도 하지 않는 것일까.

민주당의 후보이기 때문에? 아니면 그나마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방식이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를 이렇게 만든 거 아닐까?


관련기사: 금강서 136cm 초대형 메기도 죽었다

 



사진: 금강요정 오마이 뉴스 김종술 기자님




0.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시작 된 지구의 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조직된 시위였다고. 2,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지구의 날 행사에 참가하여 연설을 듣고, 행동했다고 한다. 피켓에 "신은 죽은 것이 아니다. 다만 지구에서 오염되었을 뿐이다(God is Not Dead. He is Polluted On Earth).", "당신이 해결책의 일부가 아니라면, 당신은 공해의 일부다(If you aren't part of the solution, You are part of the pollution)." 등의 피켓이 등장했다고 한다.

덧. If you aren't part of the solution, You are part of the problem.의 패러디인 듯 한데, 어쩜 저리 라임이 잘 맞는지...^^;

1. 넬슨 상원의원과 함께 지구의 날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Ira Einhorn은 1977년 자신과 헤어지려한 여친 Holly Maddux를 살해하고, 17년간 유럽에서 도피를 다니다가 종신형을 선고받음.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짐. 1999년 작, 무려 나오미 왓츠가 나옴!

2. 그러나 사실 Einhorn은 행사를 위해 기여하기보다는 방해를 많이 했고, 사회를 보면서 자기 잘난척을 한 사기꾼일 뿐이라는 증언들이 쏟아짐

3. 지구의 날 기획과 별개로 Einhorn이 당시의 반체제운동에 핵심 인물중의 한 명인 것은 자명해 보임. 한국과학사학회지(2011)에 실린 천현득 교수의 "히피, 물리학의 길을 묻다"는 서평을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옴.

"세 번째는 연구결과들을 유통하는 일과 관련된다. 사변적이고 철학적 냄새가 나는 논문은 체계적으로 거부되던 시절, 히피 물리학자들은 보다 유연한 태도를 지녔던 유럽의 저널이나 신생 저널에 눈을 돌리면서 동시에 연구 결과를 유통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냈다. 벨의 정리와 관련된 최신 연구들은 이라 아인혼(Ira Einhorn)의 유니콘 서비스(Unicorn preprint)를 통해 유통되었다. 아인혼은 1960년대 신좌파 운동의 총아로, 제1회 지구의 날을 기획한 인물 중 하나였다. 현대물리학과 의식, 초심리학 등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유리 겔러의 옹호자였으며, 1970년대 필라델피아 히피의 상징이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능했는데, 벨 회사 중역의 도움으로 미출판 원고들의 거대한 유통체계를 구축했고, 이는 곧 FFG의 최신 아이디어들의 유통 중심이 되었다. 또한 뉴욕 출판계와의 인연을 통해 대중을 위한 물리학 저술들을 출판하도록 도왔다. 1974년 출판된 사파티와 울프의 [시공간과 그 너머 (Space-time and Beyond)]는 물리학 대중서의 가능성을 확인해주었고, 이어 출판된 주커브(Gary Zukav)의 [춤추는 물리 (The Dancing Wu Li Masters)]와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Tao of Physics)]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뒤이어 양자역학의 최신 논의들을 담은 교과서 등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들 대중서와 교과서는 텅빈 물리학 교실로 학생들을 다시금 유인하는데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4. 유럽에 있는 동안 심지어 TV 출연까지 하면서 미국 정부를 약올리고 결혼까지 해서 살고 있었음. 나름 재능은 있었을 지 모르지만... 2002년 판사가 한 평가가 가장 정확한 듯.
'미숙하거나, 정보가 없거나, 의심이 없거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먹이로 삼는 지능적인 딜레탕트(an intellectual dilettante who preyed on the uninitiated, uninformed, unsuspecting and inexperienced)'

5. 문제는 이 사람에 대한 조롱이 반환경론자들의 무기로 쓰이고 보수 언론에 이런 타이틀로도 등장한다는 것... ㅠㅠ "쓰리마일 섬보다 Ira Einhorn의 아파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오늘부터 우리가 물값을 받기로 되어 있소.”

웬 물값을 내라는 거요?”

남의 물을 길어가면 돈을 내야지 몰라서 묻는 거요?”

한양 상인의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물장수도 목에 핏줄을 세우고 말했지요.

남의 물이라니?”

허어, 이 바보야! 대동강 물의 주인이 바뀌었단 말이야!”

이 대동강 물에 주인이 어디 있어? 바보는 너희들이야.”

이놈아, 이걸 봐! 우리가 이 대동강을 5천냥에 샀단 말야. 이게 매매 계약서다. 눈이 있으면 가까이 와서 똑똑히 읽어봐!”

한양상인이 매매 계약서를 펼쳐 보이자, 물장수는 껄껄 웃었어요.

살다가 별꼴 다 보겠네!”

뭐라고?”

이제 양쪽에 시비가 붙었어요.

이 자식들, 어디서 굴러들어왔어? 대동강은 나라 것인데 누구 맘대로 사고 파는 거야? 강물에 임자가 어디 있어?”

이 때, 또다른 물장수가 나타났어요.

왜 그래?”

어디서 굴러들어 온 녀석들이 대동강 물을 샀다고 돈을 내라지 않겠어?”

, 이놈들이 평양 박치기 맛을 못봐서 환장했구나?”

두 물장수들은 지게를 벗어 놓고 한양 상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어요.

우리 말을 먼저 들어 보시오. 어제 우리가…….”

한양 상인들은 대동강을 사게 된 이야기를 자세하게 늘어 놓았어요. 두 물장수는 배를 잡고 웃었지요.

아니 그럼, 이 대동강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나라 것이란 말이오?”

그걸 말이라고 하오?”

크으!”

한양 상인들은 그제야 봉이 김선달에게 속은 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어 어찌 할 도리가 없었어요. 그들은 얼른 차일을 거두었어요. 더 이상 거기에 있다가는 물장수들에게 놀림감만 되기 때문이었지요.

봉이 김선달이 약아빠진 한양 상인들에게 대동강을 팔았대!”

하아, 그거 잘 되었군!”

평양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김선달 이야기를 하며 웃었답니다.


출처: 한국고전 봉이 김선달 상권 대동강물을 팔아먹다, 해성E&P


물이 왜이래 강좌를 준비하다가...



공간, 환경

Posted 2016. 6. 21. 01:48

과정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고유한 공간적 틀을 정의한다.

Processes do not occur in space but define their own spatial frame. 


(The concept of space is embedded in or internal to process. This very formulation implies that, as in the case of relative space, it is impossible to disentangle space from time. We must therefore focus on the relationality of space-time rather than of space in isolation. The relational notion of space-time implies the idea of internal relations; external influences get internalized in specific processes or things through time (much as my mind absorbs all manner of external information and stimuli to yield strange patterns of thought including dreams and fantasies as well as attempts at rational calculation). An event or a thing at a point in space cannot be understood by appeal to what exists only at that point. It depends upon everything else going on around it (although in practice usually within only a certain range of influence). A wide variety of disparate influences swirling over space i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concentrate and congeal at a certain point to define the nature of that point. Identity, in this argument, means something quite different from the sense we have of it from absolute space. Thus do we arrive at an extended version of Leibniz’s concept of the monad.)


-공간이라는 키워드, David Harvey, 




&



환경이 종을 선택했다.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에 (특정 종이) 대발생하는 것

-4대강 재자연화 포럼, 박정호 박사님 발제 중

황어 치어와 연어

Posted 2015. 11. 7. 14:14

KBS 야생일기라는 다큐를 보다보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낳은 연어의 알이 같은 회유성 어종인 황어 치어의 먹이가 된다.

생각해보니 봄에 강을 거슬러 올라와 낳은 황어의 알은 

그 사이 부화하고 자라나 가을즈음에는 치어가 되겠구나.


안타까운 뉘앙스의 내래이션을 들으면서 나도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 느끼다가

시스템을 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장면을 보여주며 

육식동물을 포악하다고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처럼.


또한, 정말 자연 시스템은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우리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러 저러한 전제 하에서' '이러저러한 조건을 넣어봤을때'

'이러저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어떤 일에 대해 '이 것을 하면 100% 좋아진다 '고 얘기하는 학자는 

대부분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학자적 양심을 팔아먹는 사기꾼이거나,

자신의 방향성이 신념이 되었지만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는 그런 확신을 누군가가 던져주길 바란다는 건데,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

다만 그 얘기를 받아들이려면 그 당사자에게 본인의 말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먹고 튀는 것이 아니라...


(알이 없는 상태에서 수컷들이 정자를 뿌리는 것을 '헛방정'이라고 한다.

'정'자를 '방'사하는데 알이 없으니 '헛'일인 것.)



지난 3월 말 섬진강에 다녀왔다.

구례에서 점심을 먹고 섬진강 본류를 따라 가장 먼저 간 곳은 내서천이 합류하는 지점.

다른 말로 피아골이라고 부르는 곳의 입구였다.


거기로 가장 먼저 달려 간 이유는 음력 2월, 황어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강중에 접경지역에 하구가 있는 한강을 제외하고,

하구둑이 없는 가장 큰 강이 섬진강이다.

하구둑이 없기때문에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이 매우 넓게 나타나고,

연어와 같은 회귀성 어류들이 산란을 위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섬진강의 경우 음력 2월 비가 오고 나면 이후 며칠동안 황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함께 동행했던 서풍 박용훈 사진작가님은 우리와 함께 내려가기 이틀 전,

비가 오고 난 직후 내려가셔서 황어를 한 번 보고 오신 상태였다.


산란을 위해 섬진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피아골로 향하고 있는 황어들

2015년 3월 19일 ⓒ서풍 박용훈


2015년 3월 19일 ⓒ서풍 박용훈


그 중 황어가 가장 많았던 내서천과 보다 하류의 화계천을 함께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우리가 내려간 일요일은 매화축제 등등으로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였고, 

우리는 황어를 하천 대신 화개장터 횟집의 수족관에서만 볼 수 있었다. ㅠㅠ


이틀 전 산란기에 어류를 포획하는 건 엄연히 불법임에도 투망을 쳐서 황어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맛이 없어 먹으려고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음에도 '자연산'이라는 표지와 함께 

수족관을 채우고 볼거리로 전락한 느낌이 들었다.ㅠㅠ





그런데 바다에서부터 수십 km를 거슬러 황어들이 산란을 하러 올라가는 이 내서천에는 

2012년 발표된 댐 건설 계획(주민들은 피아골댐이라고 부르고, 정부에서는 내서댐이라고 부르는)이 수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직후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댐 건설 계획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몇 년동안 거론되지 않아 주민들은 사업 자체가 백지화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38일 이낙연 전남도지사이정현 국회의원한국수자원공사 댐 관계자 등이

피아골을 찾아와 주민들에게 폐기된 줄로만 알고 있던 피아골댐에 대해 설명하고 돌아가면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내가 가 본 피아골은 너무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 자리를 뜨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4대강 사업의 처참한 결과를 보면서도, 

영주댐 건설 계획의 허구성을 알면서도,

언제까지 삽만 뜨면 끝이라는 자신감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대형 토건 사업을 강행하는 걸 지켜만 봐야할까.


딱 한 번이라도, 아무리 매몰비용이 커도 안될 일은 안된다는 전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런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을까?





개량적인 방안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준비단계인가, 

아니면 논점을 흐리고 면죄부가 되어 문제해결을 영원히 요원하게 하는 방해요소인가는 늘 고민이 되는 문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때문에 급진주의자와 개량주의자가 나눠지는 것이겠지만.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다 자전거 도로와 관련해서 비슷한 고민을 했더랬다.


[마포대교 위에서 경찰차가 가로막다]

발바리 코스의 마지막에는 마포대교를 건너게 된다.

오늘은 무엇인가 사야하는 임무를 띄고 김*중 님과 함께 둘이 따로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옆 차선에서 경찰차가 방송으로 자전거는 자전거 도로를 타야한다고 떠들더니

비상등을 켜고 앞을 가로 막았다. 무시하고 오른쪽으로 사뿐히 빠져나와 다들 모여있는 장소로 갔지만...


자전거는 법적으로 도로를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자전거 도로가 옆에 있는 경우는 자전거 도로를 타야 한다고 되어있다.

(도로교통법 제132조의2항 참조)


자전거 도로가 자전거의 안전한 통행을 돕자는 취지이지

제한하자는 취지는 아닐텐데,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말도 안되게 툭툭 끊기고, 차량이 막 주차되어있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놓고

거기로만 다니라고 강요하다니!


[도림천 자전거도로보다 위의 차도가 더 좋다]

보통 당곡사거리 인근부터  도림천을 타고 오는데,

오늘은 건널목 중간에 생긴 이상한 자전거/보행 겸용 도로를 타고 가다 도림천이 아닌 옆 도로를 따라 집에 왔다.

오다보니 작년 선거의 추억(?)이 깃든 신원시장 옆 길 등등을 지났다.


작은 규모의 하천변 자전거 도로에 대해서는 환경적인 이유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안양천 하류나, 한강 같은 규모의 고수부지에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도림천 상류(관악구 해당)와 같은 곳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하는 것은 사실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전부터 했다.

양안 중 좌안의 경우 자전거 도로 겸 산책로로, 우안은 산책로로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새들이나 작은 동물들은 쉴 곳이 없다. 

오히려 음습한 반복개 구간으로 올라 가 쉬다가 먹이를 먹으러 내려오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래서 학의천처럼 한쪽은 포장이 아닌 흙길과 자연스런 식생을 놔두고

사람의 통행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순수하게 '자전거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도림천변의 자전거 도로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림역 즈음에서부터 자전거 도로의 끝인 동방1교까지의 거리가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가는 것 보다, 

도로를 타고 가는 경우가 훨씬 짧고 가깝게 느껴졌다.

도시 하천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문제는 개수사업을 하면서 좁고 깊게 물길을 파 놓아서

주변지역과의 깊이 차이가 기본적으로 3미터가 넘는다.

큰 하천의 경우는 상관이 없지만, 작은 하천의 경우 자전거를 타면서

하천의 조경을 아무리 잘 해놨다고 해도 답답한 느낌이 크다. 


또한 앞에서 얘기했던 자전거 도로가 있는 곳에서는 거기로'만' 다녀야 한다는 내용과 더불어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를 하나의 레져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자전거'도' 하나의 유용한 교통수단으로서 일상 생활에서 이용되려면

하천변 자전거 도로는 전체 네트워크의 일부로 보는 것이 맞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설계나 도시화의 문제점이 있음에도

그러한 부작용을 잘 활용하는 사례(이를테면 물과 관련해서 터널, 지하철의 용출수 재활용,하수처리장 방류수 재활용 등)를

너무 포장하다가 보면, 근본적인 문제점을 뛰어넘어 그 자체가 아주 친환경적인 일인것 처럼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하철 용출수의 재활용은 지하의 난개발로 인해 지하수위가 낮아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닐 뿐 아니라 면죄부가 되기 일쑤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점진적인 변화나 개량적인 방안도 잘 활용해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내가 삐뚤어져서인지

적어도 지금 방식의 자전거도로와 관련된 제도와 법 체계는 

오히려 발전적인 방안을 막고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발바리의 '차선 하나를 잔차에게'나 '잠수교를 잔차교로'라는 구호가

15년이 지나 자전거 인구와 도로가 엄청 늘어나고, 여건도 상당히 발전된 것 같은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겠다.

한양의 예전 모습을 잘 보여주는 수선전도.



백운동천, 중학천, 원동계생동천, 북영천, 옥류천, 흥덕동천, 

남소문동천, 쌍리동천, 묵사동천, 필동천, 삼각동천 등등
청계천은 4대문 안에서만 이렇게 많은 지천을 갖고 있었던 하천이다.
아니, 갖고 있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고,
이러한 지천이 모여 청계천을 이뤘다고 해야할 거다.
그렇지만 그 때도 물이 많은 하천은 아니었다.

이러한 지류들은, 지금은 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복개된 하수도만 남아있을 뿐.

지금 남아있는 성북천, 정릉천은 4대문 밖에 있던 지천이다.
4대문 밖에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도 살아(?) 남은건지도 모른다.

4대문과 4소문을 연결하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한양은 
(하류의 딱 한 부분만 빼고) 
청계천과 위에 열거한 지천들의 유역경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게 합류한 청계천 역시 성곽을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오간수문과 오간수교를 만들어 청계천을 성곽 밖으로 흘려보냈다.



청계천을 복원한답시고 만들어 놓은 오간수문 모형은
이제 더이상 청계천의 물을 다리 사이로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물길과 평행하게 놓여 전시 되고 있을 뿐이다.


ㅠ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삽질을 하다보니, 
문득 iMac 5k가 사고 싶어졌다. 
물론 그럴 돈이 없으므로, 사진 못할 것이다. 
내년에 괜찮은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살지 모르겠지만
그럴 일도 없을 것같다.

내가 게을렀던 사이 지리정보시스템(GIS)은 이만큼 달려가고 있었구나.
혼자 열심히 쫒아서 달려가다보니
왠지 외로움 밤이다.







하천변 자전거 주차장

Posted 2014. 3. 20. 14:40

안양 학의천의 자전거 주차장 
vs. 관악 도림천의 불법 주차 자전거 강제 매각 경고 현수막.






도림천 처럼 작은 하천에 한 쪽에는 자전거 도로를, 
한 쪽에는 산책로를 놓는 것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도림천 하류의 구로구간이나 안양천 정도로 제외지가 넓어서
물과 자전거 도로 사이에 일정 구간의 완충구간, 완충띠가 있거나
적어도 생물들이 쉴 수 있도록 
한쪽은 자연스러운 수변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래 사진은 나름 자연스러운 학의천의 좌안 모습이다.



그렇지만, 
일단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놓았으면,
그리고 도림천 상류처럼 좌우안의 주거지가 
대부분 비탈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환경이라면
그에 맞게 자전거 주차 정책도 뒷받침 되어야 할 거다.
저 위치에 여러대의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의 자전거 주차 수요(혹은 요구)가 있다는 것이고,
자전거 도로 건설에 따르는 부대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강제 매각 경고 현수막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물론 하천 치수 문제나 지장물 관련된 부분은 함께 고려해야 할 부분...

대방역 열차길 너머

Posted 2014. 3. 17. 17:33

지난 토요일, 자전거를 타고 혼자 돌아오다 

전부터 찍고 싶었던 장소의 사진을 찍었다. 


대방역 역차길 방음벽 바로 너머에는

폭이 2미터도 채 되지 않을 골목이 있고

그 바로 앞에 낮고 작은 집들이 밀집해 있다.


이 골목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대방 지하차도로 내려가지 않고 

돌아가는 방법을 찾다가 발견했었으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다 이 곳의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 골목에 들어섰을 때,

잠시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열차의 속도와 굉음과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이 골목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또 막다른 길이라고 써있는 바닥의 문구와, 차길없음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어쩌면 되돌아 나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끌리듯 골목으로 계속 들어갔다. 

결국 막다른 길이란 의미는 '차'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고

나는 무사히 자전거와 함께 열차길 너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좁은 골목에 수레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심지어 배달 오토바이까지 다니고 있었고,

보행자들에게는 자전거도 큰 위협이 될 수도 있기에

왠만해서는 인도에서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고

자전거를 끌고 이 골목을 지났다.


토요일에는 사진을 찍고 있으니

아주머니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사진 찍어서 어디 낼꺼유?"

"이런 골목길 여기밖에 없지?" 


골목 어귀에 모여있는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엿들으니

이 곳에도 역시나 재개발 계획이 있고

이를 반대하기 위한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대화를 나누게 된 한 아주머니는

시끄럽고 살기 힘들 동네이지만

그래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며

그들은  당연히 재개발을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재개발은 어렵지 않겠냐는 낙관적인 얘기를 하셨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서울 어디든 재개발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러한 상황들이 몇몇 정책 결정자들과 경제 상황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으며,

그분들의 삶은 그에따라 이리저리 휩쓸려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간의 내 공부는 도시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한 그 안의 물길과 도로, 

도시 확장과 밀집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이를 더 깊이 파고드려면 

도시 자체에 대한 공부가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제목 번역이 맘에 안듦.

The Social Conquest에서 방점은 'conquest'가 아닌 'social'에 있다고 생각 되는데 말야.


p. 27


동물에게 적용되는 엄밀한 학술적 정의에 따른다고 해도, 

호모 사피엔스는 생물학자들이 진사회성 동물(eusociality animal)이라고 부르는 것에 속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로 이루어져 있고 

분업의 일부로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을 가진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p.32


지구의 두 사회적 정복자들에 관해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요약하자면, 

사회성 곤충의 조상과 인류의 조상은 생리 기능과 생활사가 달랐기에, 

고도 사회의 형성으로 나아간 진화 경로도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곤충의 여왕은 로봇처럼 움직이는 자식들을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낳을 수 있었다. 

반면에 선행 인류는 개체 사이의 동맹과 협력에 의존해야 했다. 

곤충의 경우에는 세대마다 이루어지는 여왕 계통에서의 개체 선택을 통해 진사회성이 진화했다. 

반면에 선행 인류에게서는 개체 수준의 선택과 집단 수준의 선택이 

상호 작용을 함으로써 진사회성이 진화했다.


... to be Continued.

이동 기록 3 -작성중

Posted 2011. 7. 14. 03:18

7월 3-4일
강천보-남한강교위-청미천-섬강-간매천-금당천-소양천-오금천-한천-이포보-(양화천)-복하천-적치장-(상주)
-내성천-영주댐 건설현장-상주보-병성천-말지천-감천-인노천-해평취수장

9-11일
남지철교-청도천-신천-온정천-함안보-광려천-영산천-(부곡)
-함안보-칠곡천-신반천-토평천-합천댐-덕곡 위원장 인터뷰-회천-덕곡천-차천-현풍천-용호천-달성보-금포천-(대구)
-금호강-백천-신천-강정천-동정천-칠곡보-반지천-광암천-이계천-신곡천-감천-말지천-상주보-병성천

이동 기록 2

Posted 2011. 7. 2. 11:01
28일-30일
감천-말지천-병성천-상주보(요양병원, 붕괴현장 흙 덮기)-섬강-청미천-남한강콘도 숙박(녹연팀 합류)
-비내섬(소하천 합류부, 건설중인 다리 붕괴)-강천보-점심-한천-이포보-저녁-상주 숙박
-강천보-섬강-강천보(s본부)-한천-이포보-한천-서울 혜화(클립 만듦)

29-30일은 2팀으로 나눔 -황팀장&수달 팀 구미 현장 등

이동 기록

Posted 2011. 6. 27. 01:59
21일-22일 사전답사
함안보-토평천-황강-합천보-회천-감천-병성천&상주보(밤)-대명콘도 단양-섬강-청미천-금당천-이포보

23일 오후-25일      
청미천-섬강-상주 숙박-병성천-말지천-감천-구미김천역-구미 숙박
-왜관철교 붕괴현장-감천-말지천-장천-병성천-섬강-청미천

26일 상주보 하류 붕괴현장
33공구 현장 사무소-요양병원-붕괴현장
 

아웃사이더 혹은 아웃라이어

Posted 2011. 5. 3. 03:49
중학교때인가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앞에 나가서 '저는 그냥 평범한 아이에요.'라고 소개를 했다가
나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샀던 일이 있다.
아마 그 때 애들과 얘기하면서 내가 여러모로 평균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처음 자각한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저런 생각과 발언을 했나 싶을 정도로
'남들과 달라서' 받는 설움을 아주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그만큼 둔했던가 아니면 남들과 다른점이 다들 하나씩은 있고,
나도 그런것뿐이야라고 생각했던건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을 나 말고 딱 두 명 봤다.
처음은 국민학교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였는데,
실은 그 친구는 졸업때까지 6년 내내 바보로 유명했던 친구였다.
반에서 나와 그 녀석만 글씨를 왼손으로 써서 선생한테 혼나고, 심지어 맞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녀석이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혼나서 억지로 고친 경우였고, 요즘에야 그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들 생각하지만,
그 때 우리의 담임 선생은 나와 그 아이를 앞으로 불러 세워놓고
고집스레 고치지 않는(달리 말하면 자신의 말을 들어 * 먹지 않는) 나와 그 아이를 비교하며
반 애들로 하여금 그 아이를 향해 박수를 치도록 했다.
1학년때의 기억이 대부분 지워졌음에도 이 기억만은 이렇게 선명한 걸 보면,
내가 충격을 받긴 받았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치지 않은 나도 참 대단-_-하다 싶기도 하고.ㅋ

그러다가
대학원에 왔더니 왼손잡이용 책상이 있었다! (트랙백 참조)
수업을 들을때면 앞쪽으로 책상을 매번 옮겨와도
다음 시간에는 어김없이 제일 뒤 구석에 밀려나 있던 그 책상에서 논문자격시험을 봤는데,
몇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책상에 앉았어도 여전히 내 논자시 이름표가 붙어있는 걸 보기도 했었다. 
그 책상이 거기 있게 된 계기가 된 대학원 선배를 한참 후에 우연히 만났는데,
그 선배가 근 20년만에 처음 본 "글씨를 왼손으로 쓰는" 왼손잡이였다. 

왼손잡이라는 사실 말고도
여자 평균키가 아니라 남자 평균키를 가졌다던가,
뭐 몸무게 역시 남자 못지 않고 발사이즈도 여자 사이즈가 아니라던가,
이런 눈에 보이는 외모에서부터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까지 그다지 평균과 가깝지는 않은듯한데,
그래서인지 남들이 보기엔 주류의 길을 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늘 감정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스스로를 마이너라고 느끼고
실은 그 위치가 편하기까지하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삐딱해진 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나와 전혀 다른 입장일지라도 '마이너'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덕분에 편협함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트위터와 3D TV

Posted 2010. 9. 2. 22:53

몇달 전쯤 지인들에게 아마 트위터는 아주 오래가지는 못할것같고,
3D TV는 소수의 전유물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다.
뭐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분석씩이나 한건 아니고
약간의 지식과 직관에 의한 판단의 결과인데,
둘의 공통점은 너무 많은 부담 혹은 불편함을 요구한다는 것과
처음에 혹하는 오픈빨에 비해 갈수록 매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것.

트위터는 실시간 소통이라는 양날의 검 자체의 문제와
트위터를 잘 이용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적의식이 명확해지는 순간
그 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3D TV는 지금까지는 "집에서 안경쓰고 TV보고 싶냐?"는 이유가 컸지만,
뭐 아주 최근 일본 모 기업에서 안경 안쓰고 볼 수 있는 3D TV를 개발했다고 하니
그 문제는 일단 제끼더라도
과연 3D TV가 그만큼 대중적이고 매력적인가에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LCD니 IPad니 Wibro니 이런 기술들과
블로그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굉장히 긍정적이었고,
환경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Sci-Fi와 새로운 기계들에 열광하던 나마저도 이렇다면,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뭐 아님 말고.

건설사는 먹튀다.

Posted 2010. 6. 15. 00:56
4대강 사업의 공정율이 이미 30%를 넘어 철회하기 늦었다고 하지만,
실은 그 공정율을 맞추기 위해 야구장 조명을 켜놓고 24시간 공사를 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새만금도, 북한산도, 시화호도 늘 주장은 한 결 같았다.
언제까지 공정율 운운하며,
일단 삽질을 시작하면 어쩔수 없다는 식의
억지를 쓰며 밀어 부치는 데에 당해야 하는 걸까.
그 과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하지만,
건설사는 어차피 먹고 튀면 그만인거다.
책임은 국민 전체가 지는거고.










그 이유는 진보가 분열하고(?),

한명숙 후로에게로 표를 몰아주지 못해서(결과적으로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어서)가 아니라

아무 대안없이 반현정부라는 이유만으로 표가 쏠렸다는 그 자체여야 한다.

그게 설령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결과일지라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건

바로 그 이유가 지금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된 배경, MB가 대통령이 된 원동력이기도 하니까.


나도 한명숙 후보가 오세훈 후보를 이기길 바랬고,

한나라당이 실질적으로 참패해서 기쁘고,

그러므로 이번 선거 결과를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가 요동치고 있고,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보통 사회가 진보와 보수 성향을 오가는 건 당연한 과정으로 보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극단적으로 선거 결과가 바뀌는 건

사회와 구성원들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p.s. 솔직히 일말의 갈등을 했었지만, 지금은 갈등을 했었다는게 부끄럽다.
이후 사람들의 진보신당에 대한 저질의 비판을 보면서,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서 결과가 바뀐게 아니구나 싶다.
하루가 지나면서 이제는 오히려 화가난다.
(지들이 뭔데) 보테준것도 없이 남의 당에 대해, 열심히 달려 온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소신있게 자기 표를 던진 사람에 대해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지만, 한 전 총리는 새만금 사업을 강행할 때 환경부 장관이었고, 총리였다.

이번 선거에서 다만 긍정적인 부분은 사람들이 선거에 적극적이 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는 것 정도인것같다.

한강 르네상스

Posted 2010. 5. 18. 23:01
지난주에 가보니, 한강이 르네상스긴 르네상스다.
토건 사업의 르네상스.

여기 저기 공사중.

여기도...

한강엔 바지선이 떠있고~ (그것도 모래를 가득 싣고)

 

공원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하천변은 여전히 음습하고, 불쾌하다. 
사람들은 강변 부지에 도로를 내기엔 포기해야하는 게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변에 고가를 지어 도로를 만들었다.
그러나 차로 그 위를 다닐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래에서는 보인다.

도시의 이면.
이건 근본적으로 문명이나 문화의 이면과 맞닿아 있다.
진짜 강의 르네상스는 근본적인 도시 구조의 변화 없이는 찾아오기 힘들지 않을까.





도시에서 열린 공간, 여가 공간이 발전하는 건 좋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 이렇게 시멘트나 콘크리트에 관대한걸까?

그리고 명확히 짚어야 할 것은,
공원형 하천과 진정한 의미의 생태하천은 다르다는 거다.

건설노동자, 세계 최초 '도시환경운동' 주도하다
[해외리포트] '시드니 재개발계획' 막아낸 잭 먼디는 누구인가
 

과학은 졌다.

Posted 2010. 5. 7. 21:39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507181132588&p=hani21
"과학은 졌다." 

그리고,
과학은,
돈과 권력의 하수인이 되기를 자청했다.

내가 요새 느끼는 무력감의 근저에는
시화호, 북한산, 새만금 등을 거치면서
사회의 학습 능력에 대해 품게된 회의가 자리잡고 있다.
학습은 나쁜쪽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과학자이지만 과학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과학은 자신을 기만해선 안된다.
"과학은 졌다."의 진정한 의미는 과학적인 사실이 정책을 뒤집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위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팔아먹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서로 앞다퉈가며 정책에 맞는 근거를 생산해주는 모습은 꼴사납기 그지없다.

4대강 사업과 자전거 도로

Posted 2010. 5. 3. 14:52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9966 

발바리 지음님 글

송* 선배의 부탁을 받았지만
내가 워낙 발바리 활동을 안한지 오래라,
지난주에 오랫만에 한이 아버님께 연락함.

미안해요, 사람 잘 못 봤네요.

Posted 2010. 1. 20. 11:44

한때는 나와 한 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현 정계의 최고급 관리자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미안해요, 제가 사람 잘 못 봤군요."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하는 건 
단지 같이 일을하고 부데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들어맞았을 뿐이지,
(실은 이것도 100%는 아니지)
좀 멀리서 지켜 본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반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50%에서도 상당 부분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거나
영원히 진위가 판명되지 않을 종류의 것이지,
다 맞았다고 보긴 힘들것이고.

더 웃긴건 그 중 외부의 어떤 이미지만 보고 나의 바람이 투영된 경우인데,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라던가 이런 사람이어야해 라던가.

생각해 보면,
난 참 못말리게도 사람들에 대해 희망을 품고,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입으로는 불평과 불만을 토해냈지만,
실은 그건 애정이 있었다는 반증일뿐이고.

이제는 좀 미지근해질 때도 되었다.
차가울 필요까진 없을지 몰라도.

사회의 이면

Posted 2009. 4. 9. 16:25


도림천 반 복개구간 철거중...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과 지천들을 오가며 처음 느낀 것은 사회 이면에 어두운 곳이 많다는 것이었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는 강변의 둔치를 이용해서 도로를 만든것이고 서울 교통에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갖가지 시설물들과 슬럼화된 공간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편리해졌다, 문명화 되었다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여전히 더럽고 힘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만 그러한 모습들이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되고 감춰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쓰레기가 방치되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누군가는 한밤과 새벽에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정부 기관에서는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끝내기 위해
누군가는 새벽 5시에 출근해서 계단을 손걸레로 일일히 닦고 있다.

그리고 생태복원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은 이런 모습이다.

왼손잡이용 책상

Posted 2008. 11. 1. 19:17

http://zine.media.daum.net/mega/h21/200704/03/hani21/v16263047.html

한겨레 기사를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Programming을 혀끝으로 살짝 맛 만 본 내가 감히 할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저건 단지 Windows OS뿐만 아니라
흔히들 '편리하다'고 얘기하는, 혹은 user-friendly하다고 얘기하는
많은 software가 가지고 있는 함정이 아닐까?

그냥 이렇게 저렇게 click, click해서 넘어가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쓰고있지만
실은 그 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어떤 전제로, 어떤 조건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쓰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게 바로 컴퓨터다.

까만 창에서 일일이 명령어를 쳐 줘야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 'default'가 무엇인지, data 구조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사용 할 수 있었던 것들도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그만큼 잘 모르고 써서 잘못된 결과 조차도 구분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 섞인 사용자층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

internet에는 정보가 넘쳐나고, 그 중엔 좋은 자료도 많지만
덥썩 믿어버려서는 안되는 쓰레기 정보들도 넘쳐나듯.

 

연구실 앞 새들

Posted 2006. 5. 4. 15:43
작년 이맘 때, 연구실 앞에 어치 부부 한 쌍이 날아들어 집을 지었다.

그래서 알도 낳았었는데,

그만 못된 까치놈이 날아오더니 알을 품고있던 어미를 쪼아서 쫒아내고

알을 물고 날아가버렸다.

이후 어치 부부는 이사를 가버렸고, 나는 이웃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치는 나와는 인연이 꽤 있는 새인데, 3년 전쯤 답사를 갔다가

선생님께서 어치소리가 들리자 어치가 왜 語雉인지 알려주셨다.

매우 시끄러운 새여서 그런 이름이고 영어로도 수다쟁이(Jay)라는 이름이었다.

목소리가 큰 나를 보시며, 누구랑 닮았지?라는 말씀을 하셨었따. ㅡ.ㅡ

그런 얘기 후 다음날 해남에서 비자숲을 보러 올라가는데

다른 일행들이 둥지에서 떨어진 어치 새끼를 데려왔다.

눈은 퀭하고 입을 벌린채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부동자세로 있는 녀석이 불쌍해진 우리 일행은

지렁이 등 벌레와 물을 먹이기 시작했고 한참 후 기운을 차린 녀석은

우리를 잘 따랐었다.

그러다 내 팔을 타고 등산을 하더니 결국 내 머리에도 올라앉았다. ㅡㅅㅡ


새를 데려오는 것 보다는 다시 풀어주는게 좋다고 생각한 우리는 어치를 떼어놓고 서울로 올라왔다.

나중에 새를 잘 아시는 분의 말로는 너무 어려서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었다.)

 

그늘이 진 연구실 앞에 먹을것이 많은지 다른 새들도 많이 찾아온다.

먼저 호랑지빠귀.


그 다음은 바로 연구실 앞은 아니지만 근처에서 찍은 직박구리.

이 외에도 박새 등도 많이 오지만 덤불 사이로 재빨리 움직이는 통에 찍을수가 없었다. ㅡ.ㅡ

공리주의와 다수의 불행

Posted 2006. 4. 18. 19:09

특강 중...

 

공리주의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어떤 마을에 눈, 간, 폐, 심장 등등이 아픈 사람들이 병원에 모여있고,

그들을 문병 간 건강한 젊은이가 하나 있을 때

그 젊은이를 해체(?)하여 아픈 사람들 여럿을 낫게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공리주의다...라는 얘기를

한면희 선생님이 오셔서 하셨다.

 

보통 공리주의를 비판할 때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담이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정전 선생님은 약자의 입장을 기준으로 삼는

롤즈의 정의론을 대안으로 얘기하시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다수가 행복하기 위해 소수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도 물론 정의롭지 못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왜 우리나라는 소수가 행복하고, 다수는 불행한 사회가 되었을까?

(공리주의의 정의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왜 소수의 극대화 된 행복이 다수의 불행을 대체하는 상황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