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마지막날의 결심

Posted 2015. 12. 31. 16:52



2004년 오늘, 꼭 11년 전...
난 아직 갯벌이 살아있던 새만금, 계화도, 살금 마을로 향했다.

(http://lunart.tistory.com/57)

석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그 곳으로 향한 이유는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새해를 맞기 위해서였다.
2005년 1월 1일 갯벌배움터 그레의 벽화를 그렸다.
'그레'라는 글자를 나무토막 모양으로 그리며 뿌듯해 했다.


즐겁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다.
싸움은 기울어 있었고, 
사람들은 운동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싸우고 있던 다른 사람들을 탓하기도 했다.

이 날 나름 결심을 했었다.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아서
이런 일이, 
평생 그 곳에서 갯벌과 조화롭게 살아오던 사람들의
터전이 망가지는 일이,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일이,
수많은 생명들이 꽥 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없게 만들겠다는 야심찬 결심이었다.


1년 반 즈음 후, 사진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던
기화언니는 방조제가 완공된 새만금에서 물질을 하다 돌아가셨다.
항상 저런 얼굴로 먹고 자는 걸 살뜰히 챙겨주시던 안주인이었다.
난 스스로 내가 그 죽음에 대해 슬퍼할 자격이 있나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했다.
열사들의 죽음에 대한 운동판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느꼈던
일종의 모욕감같은 것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 사진을 공개된 장소에서 꺼내고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사실 난 2005년 1월 1일 이후에 새만금에 가본적이 없다.
갯벌에 박혀있던 장승들이 
처음부터 뭍에 박혀있었던 것 처럼 서 있는 모습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새만금에서 새해를 맞으며 다짐을하고, 5년 더 공부를 했다.
하천관련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는 내 앞에 펼쳐진 건
4대강 사업이었다. 
공부를 했지만 여전히 나는 무력했고, 
애초에 왜 공부를 하자고 생각했는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서 또 6년이 지났다.
열심히 살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안좋아 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어떤 결심을 했다.
적어도 더 이상, 빙빙 돌아가거나 도망치지 말자는 생각에 
하게 된 결심이었다.

내년 초에 꼭 새만금에 가야겠다.


상처떠나보내기 -이승욱

Posted 2015. 12. 26. 00:50

"보통 우리는 '화'를 상대를 다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죠. 

화는 불이니까 누군가를 향해 발사하면 그가 화상을 입잖아요. 

그렇지 않고 화를 담고 있으면 내 속이 화상을 입겠죠. 

하지만 불을 잘 쓰면 좋은 도구가 되는 것처럼 

화, 분노라는 감정도 잘 처리하면 

아주 좋은 에너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감정이 그렇습니다만, 

누구도 다치지 않게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났다면 먼저 '화가 났다'고 말을 하십시오. 

정말 화를 내지 마시고요. 

그것이 화를 다루는 첫걸음입니다."

-p. 141


"외로움으로 인한 괴로움보다,

의존함으로써 경험할 비루함의 고통이 더 크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게되었다.

-p. 56


"인간은 이해되어야 할 존재이지 

설명되어야 할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p. 49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 중 

잃어버린 그 하나와 자신을 동일시할 떄가 너무나 많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죽는 사람, 

투자한 돈을 날렸다고 죽는 사람, 

세무조사가 들어온다고 죽는 사람,

일자리를 잃었따고 죽는 사람.

이들은 모두 잃어버린 그것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했기에 

삶의 의미도 함께 상실한 것이다."

-p. 60



송곳 1화

Posted 2015. 11. 11. 02:57






용기만 있고 공포를 모르는 군인은

엉뚱한 전투에서 가치없이 죽는다.

송곳 6회를 보다가

Posted 2015. 11. 9. 13:58

...생각 난 예전 일...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본인이 돈을 굴려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어느즈음부터 마트에서 일을 하셨다. 

처음에는 동네 마트에서 일을 하셨고, 정*원, 풀*원 등 상품의 판매 업무를 하셨다.

남은 묵을 매일 먹는 게 지겹기도 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일을 계속 하신 건 아니었고, 중간에 쉬기도 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을 다닐 때 동네에 *마트가 생겼고 거기가 본점이 되었다.

엄마는 거기서 수족관 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서,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일을 하셨다.

어느날 대학 선배 결혼식에 갔다가 여러 다른 선배들을 만나 근황을 전하다

선배 한 명이 바로 그 마트 관리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어 우리 엄마도 거기서 일하시는데...라고 얘길 했다.

그리고 어느날 집에 갔다가-그 때 자취를 하고 있었으니까-

엄마에게도 학교 선배가 거기 있다는 얘길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그 마트에 가서 그 선배를 우연히 만났는데,

선배가 우리 엄마같은(절대 비유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쁜이들"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게 되었다. 

순간 멍해졌다. 


검사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영감님 호칭을 받고 나이 많은 피고인, 참고인들에게 반말로 얘기하는 게 

검사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극소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곳에서 각자의 직업에 따라, 

혹은 같은 직장 안에서도 관리직/판매직, 정규직/비정규직이 그냥 좀 다른 차이가 아니라 

차별도 넘어서 인간적으로도 다른 계급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생각했던 것 같다. 


구고신 소장이 교육을 하다가...  "애들에게 일하는 모습 보여줄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데,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람'이 아니라 '숫자'라고. 


그렇지,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는 절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생각이 당연할 수 있다는 걸...

황어 치어와 연어

Posted 2015. 11. 7. 14:14

KBS 야생일기라는 다큐를 보다보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낳은 연어의 알이 같은 회유성 어종인 황어 치어의 먹이가 된다.

생각해보니 봄에 강을 거슬러 올라와 낳은 황어의 알은 

그 사이 부화하고 자라나 가을즈음에는 치어가 되겠구나.


안타까운 뉘앙스의 내래이션을 들으면서 나도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 느끼다가

시스템을 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장면을 보여주며 

육식동물을 포악하다고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처럼.


또한, 정말 자연 시스템은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우리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러 저러한 전제 하에서' '이러저러한 조건을 넣어봤을때'

'이러저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어떤 일에 대해 '이 것을 하면 100% 좋아진다 '고 얘기하는 학자는 

대부분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학자적 양심을 팔아먹는 사기꾼이거나,

자신의 방향성이 신념이 되었지만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는 그런 확신을 누군가가 던져주길 바란다는 건데,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

다만 그 얘기를 받아들이려면 그 당사자에게 본인의 말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먹고 튀는 것이 아니라...


(알이 없는 상태에서 수컷들이 정자를 뿌리는 것을 '헛방정'이라고 한다.

'정'자를 '방'사하는데 알이 없으니 '헛'일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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