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
Posted 2005. 1. 4. 10:10공부를 한다는것.
혹은 가방끈이 길다는 것,
혹은 먹물이 된다는 것.
그게 대단한 일이라거나,
뭔가 우월하다거나 이런 생각 안한다.
이건 '환경'이라는 주제를 택했다는 면에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환경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것 중 하나가
쓸데없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는 분명히 다른 얘기다.)
공부를 한다거나 환경을 주제로 택했다는건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짐과 같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부분,
무슨 주의자라거나 무슨 학자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그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그 사실 하나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여태까지의 환경운동가들이,
혹은 지금까지 학자라는 사람들이
제 몫을 제대로 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지는 불신감이고,
넘어야 하는 벽이다.
나는
솔직히
두가지 입장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 온 느낌이다.
물론 최근 2년간의 경우 한쪽에 많이 치우쳤지만.
연구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공부를 더 하는것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
졸업하고 엔지오로 갈꺼냐고 물어봤었다.
학교 밖을 나서서 보다 현장에 가까이 있는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공부 더 해서 뭐할거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
둘 중 하나의 입장에 치우치면,
내가 되리라 다짐했던 역할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실제로 사람들과 만나고 부데끼며 느끼는 내용이 '목적'이고,
그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 내 위치로 선택한 것이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연구실이란 공간에서 포장지로써 환경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 운동가의 이미지를 살짝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니지만
학문적인 면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나름대로, 무던히, 노력했다.)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학자들이 옳은 얘기를 해도 바뀌는 건 없다며,
그들을 불신했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활동가들의 방식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어떤 활동이 실패했을때,
새만금이 막히고 있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거다.
적어도 엊그제 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엊그제 내가 어딘가에 가서 들은 얘기는
활동가의 입장에서,
학자란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야 소용없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결국 실패하지 않았는가..
뭐 이런 얘기였다.
다음날 아침,
너한테 한 얘기 아니다..란 얘길 들었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양쪽 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서로 다독이고 고생했다고 얘기해도 시원찮을 판에
니네가 한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니.
만일 누군가
삼보일배까지 했는데 아무 소용없잖아..
그런거 다 필요 없다니까..라고 얘기한다면,
어떨까?
나라면 가서 죽도록 패주고 싶을것 같다.
근데 솔직히 그 얘길 들으며 비슷한 심정이 들었다.
내옆에 있는 선배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새만금 수질 모델링을 한 사람들이 있다.
법원에서 김정욱 교수님이 이건 썪을 수 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바로 그 과정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단지 프로젝트로만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도착하기 전에 비가 올까봐 하던 일 다 팽게치고
장비 챙겨서 과속해가며 내려가던 사람들이었다.
밤새 자기 몸 혹사시켜 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결과를 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도
이 사업은 말도 안되는 사업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있었고,
활동가들의 여러 소식들에 함께 마음아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활동가들의 입장은
단지 그 주장이 자신들의 상황에
도움이 되는 입장이므로 잠깐 채택했지만
결코 함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보고싶은것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지역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와 유사하다.)
자신들만이 옳은일을 하고 있다는
독선에 빠져 있다고 밖에 생각이 안된다.
만일
내가 친구, 혹은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내가 되려고하는 사람의 역할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가 된다면,
앞으로 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던 어떤 사람들의 말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비수가 될 수도 있다.
이건 단순한 자기 방어다.
그렇게 상처받고 싶지 않은.
[이하 진보넷 댓글]
그나저나, 올만입니다 ㅎㅎ
정말로 누군가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본다..라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정말 힘든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Vex님/ 정말 올만이네요.
계란한판 관련된 글에 답글 달았는데,
별 말씀이 없으셔서 어디 멀리 가셨나 했습니다.
가까운데 사시는데 언제 가난한 학생한테 밥한번 쏘세요.^^ㅋ
또 공부던 활동이던 무엇을 중심에 두고 할 것인가도 역시 중요할 것 같고... 간혹 현실주의냐 근본주의냐로 다툴수는 있겠지만, 과정으로서의 다툼이 서로를 견인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게 구분하고, 밀쳐내고 그런거 너무 싫다.
활동가들의 전문가화 그부분도 동감하고.
솔직히 계화도 분들은 그렇게 구분 안하시잖아.
근데, 오히려 어찌보면 이미 지식인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끼리
그런 구분이 더 심한것같기도해.
어쩌면 그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된건
모두 다 힘들게 자기 길을 살아내면서,
같은 곳을 보고있다고 생각되는데,
오해하고 상처주는게 싫어서였을거야.
그런 사람들한테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 역시
함께가는거다라는걸 인정받고싶은 욕심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쓴건
여러번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고민하는 과정이겠지만,)
다른 방식의 활동을 비판하는 자리가
지금 내가 무언가를 지속해 나가는 힘을 잃게 만드는 거라면
지금의 나는 더이상 그걸 버틸만큼 힘이 없다는 얘기였어.
몇번 겉도는 느낌이 들고나서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생각을 하고 무슨공부를 하는지
얘기할수가 없더라.
- Filed under : Life Goes on~
혹자들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폄하하더라도..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추진한다면 언젠가는 진가가 드러나는 날이 있을겁니다..^^